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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이상윤(1969년 4월 10일 ~ 현재)은 대한민국 국적의 미드필더 출신의 지도자이다. == 선수 프로필 == {{col-begin}} {{col-3}} *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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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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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73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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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69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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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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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기록은 리그컵 포함. 2016년 6월 1일 기준.
 
: K리그 기록은 리그컵 포함. 2016년 6월 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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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시절 ==
 
== 선수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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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시절 ===
 
=== 프로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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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일화 천마]]에서 데뷔, 1991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1993년 일화의 우승에 기여 MVP와 베스트 11을 차지하며 일화의 전성기를 이끈다.2001년엔 [[부천 SK]]로 이적했으나 부상으로 부진했고, 결국 2001년을 마지막으로 프로무대를 내려온다.
  
 
=== 국가대표 시절 ===
 
=== 국가대표 시절 ===
1995년 2월 19일, [[다이너스티컵]] 對 중국 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A매치 첫골은 1997년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對 [[홍콩]]전에서 기록하였다.<ref>다만 대한축구협회의 선수별 A매치 기록에는 최용수 선수의 A매치 데뷔전과 데뷔골 기록이 1995년 1월 31일, [[칼스버그컵]] 對 콜롬비아 전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칼스버그컵에 대한민국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이 참가하였기 때문에, 양 팀 모두 A 국가대표팀이어야 한다는 A매치 개념상 이 경기는 A매치로 볼 수 없다.</ref> 이후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참가하여, 최종 예선에서만 [[카자흐스탄]] [[해트트릭]]을 포함해 7골을 터트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월드컵 4회 연속 진출의 1등 공신으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자신의 장점인 파괴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해,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ref>특히 [[벨기에]] 전에서 결정적 찬스를 놓친게 컸다. 이 때부터 찬스를 놓치지 않던 독수리의 명성에 금이가기 시작했다.</ref> 이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했고,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과 2002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지만 미국과의 본선 조별리그 2차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한을 씻는데는 실패하였다. 한 때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써 이름을 날렸지만 유독 월드컵에서는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평. 2003년 동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뒤 다시 복귀를 노렸지만 이후 국가대표 유니폼과는 인연이 없었다.
+
1990년 2월15일 노르웨이전에서 데뷔, 데뷔골을 뽑아낸다. [[제1회 다이너스티컵]]에 출전 [[한중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맹활약 한다. 결국 [[1990년 FIFA 이탈리아 월드컵]]의 본선 엔트리에 들었으나 본선 출전에는 실패한다. 1992년 [[제2회 다이너스티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던 이상윤은 1997년 대표팀에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5년만에 국가대표에 복귀한다.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전 경기(8경기)에 출전, 3골<ref>[[최용수]]의 선취골로 앞서나갔으나 샤츠키흐의 동점골로 다잡은 경기를 놓칠뻔 했던 잠실에서의 우즈베키스탄과의 2차전에서 경기종료를 얼마 안남겨두고 결승골을 넣으면서 2연승을 기록, 대한민국을 상승세로 이끈다.</ref>을 득점하며 맹활약 한다. 이후 [[킹스컵]][[다이너스티컵]] 그리고 각종 평가전에서 득점을 하며 맹활약 하지만 1998년 월드컵 본선에서는 극도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질타를 받는다. 네덜란드와의 본선 2차전을 마지막으로 이상윤은 국가대표 무대를 내려온다.<ref>2006년 [[베스트 일레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멕시코전을 앞두고 훈련중에 머리에 공을 맞고 쓰려져 잠시 기절했고 깨어났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에 나선게 원인이었음을 밝힌바가 있다. 당시 [[신문선]] MBC 해설위원은 네덜란드전에서 교체카드를 모두 소진해버리자 선수를 빼지않는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을 정도...</ref>
 
 
  
 
=== 플레이 스타일 ===
 
=== 플레이 스타일 ===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의 집중력과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다. 이 때문에 독수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수비 플레이시, 각종 반칙성 플레이와 허슬 축구가 대세였던 90년대 초중반 K리그에서, 상대 수비진들의 각종 플레이 패턴을 모두 파괴하며 골을 꽂아넣는 몇 안되는 국내파 공격수 중 한명으로 군림하였다. 이러한 장기는 J리그 진출 이후, 한층 더 빛을 발했다는 평.
+
발이 빠르며 드리블 능력이 뛰어나다. 찬스가 나면 바로 슈팅으로 연결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 지도자 생활 ==
 
== 지도자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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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적 ==
 
== 업적 ==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2002 FIFA 월드컵]] 4위
+
** [[제1회 다이너스티컵]] 우승
 +
** [[제2회 다이너스티컵]] 준우승
 +
** 1998년 [[킹스컵]] 우승
  
* {{국기그림|대한민국}}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 [[대한민국 FA컵]] 우승: 1회 (1998)
 
** [[K리그 컵]] 준우승: 2회 (1994, 1999)
 
** [[슈퍼컵]] 준우승: 1회 (1999)
 
  
* {{국기그림|대한민국}} [[FC GS]]
+
* {{국기그림|대한민국}} [[일화 천마]], [[천안 일화 천마]],[[성남 일화 천마]],[[부천 SK]]
** [[대한민국 FA컵]] 우승: 2회 (2010, 2012)
+
** [[K리그]] 우승: 3회 (1993,1994,1995)
**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2013)
+
** [[K리그]] 준우승: 1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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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FA컵]] 우승: 1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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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FA컵]] 준우승: 2회 (199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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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컵]] 우승: 1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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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컵]] 준우승: 1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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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컵]] 준우승: 1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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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그림|대한민국}} [[천안 일화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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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 클럽 슈퍼컵]] 우승: 1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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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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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97)
  
  
 
* 개인
 
* 개인
** [[K리그 신인상]] : 1994
+
** [[K리그 MVP]] : 1993
** 프로축구 올해의 인기선수 : 1995
+
** [[K리그 베스트 11]] : 1991
** [[백상체육대상]] 구기개인 : 1995
+
** [[K리그 베스트 11]] : 1993
** [[백상체육대상]] 구기경기 : 1997
 
** [[K리그 MVP]] : 2000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K리그 감독상]] : 2012
 
** [[AFC 올해의 감독상]] : 2013
 
 
 
  
 
== 이야깃거리 ==
 
== 이야깃거리 ==
* 1998년 월드컵 이후, [[서정원]] 등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잇달아 이루어지면서 최용수 선수도, [[최호규]] 에이전트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해외진출을 모색하였던바 있다. 그러다 1999년 2월, [[김도근]] 선수와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이적료 500만 달러, 연봉 70만 달러의 조건으로 입단하는데 합의하였다며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터졌는데..<ref>김도근 선수의 경우 이적료 150만 달러에, 연봉 50만 달러로 소개되었다.</ref> 만인의 기대를 안고, 잉글랜드로 출국한 최용수는 정작 웨스트햄 측으로부터 '''우리는 그런 제의를 한적도 들은적도 없다'''는 통보를 들어야했다. 결국 1주일 동안 웨스트햄 2군에서 두 선수는 간단한 테스트만 보다가 조용히 귀국하였고, 이것이 그 유명한 '''[[최용수 웨스트햄 사건]]'''이었다. 최용수 하면 아직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이며 본인에게는 흑역사로 기억되는 에피소드일듯.
+
* 현역 시절 별명은 '''팽이'''였으나 해설때 목에 가래가 낀다해서 가레스 베일의 이름을 따 '''가레스 상윤'''으로 불리고 있다.
  
*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투르크메니스탄]], [[베트남]], [[일본]]을 상대로 '''3경기 연속 경기당 2골'''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고있다. 다만 투르크메니스탄 전에서는 최용수가 2골을 넣고도 3골을 실점해 대한민국이 역전패를 당했고, 더군다나 방콕 아시안게임은 8강전에서 [[태국]]의 Thawatchai Damrong-Ongtrakul에게 역사적인 중거리 골든골을 헌납하며 져버린 흑역사 대회로 취급되어, 최용수 선수의 위 대기록이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
* 흥겨운 축구 해설로 '''막걸리 해설''로 불리고 있다.  
  
 +
* [[건국대학교]] 감독 취임 이후에 건대 출신 선수가 맹활약하면 해설중에 건대출신임을 강조한다...
  
 
== 갤러리 ==
 
==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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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73년생]][[분류:동래고등학교의 선수]][[분류:연세대학교의 선수]][[분류:LG 치타스의 선수]][[분류:안양 LG 치타스의 선수]][[분류:해외진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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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69년생]][[분류:동대부고의 선수]][[분류:건국대학교의 선수]][[분류:1990년 드래프트 지명자]][[분류:일화 천마의 선수]][[분류:천안 일화 천마의 선수]][[분류:성남 일화 천마의 선수]][[분류:부천 SK의 선수]][[분류:해외진출 선수]][[분류:축구 해설가]]

2016년 6월 6일 (월) 11:50 판

이상윤(1969년 4월 10일 ~ 현재)은 대한민국 국적의 미드필더 출신의 지도자이다.





선수 프로필

  • 성명 : 이상윤
  • K리그 등록명 : 이상윤
  • 출생일 : 1969년 4월 10일
  • 신체 조건 : 179cm / 67kg
  • 현 소속 클럽 : 선수 생활 은퇴
  • 국가대표 경력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
1990년 다이너스티컵 대표
1992년 다이너스티컵 대표
1998년 다이너스티컵 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예.본선 대표
대한민국 대한민국 (통산 A매치 30경기 12골)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일화 천마 1990 14 7 4 1 1 0 0
1991 35 15 15 5 4 0 0
1992 35 22 12 2 3 0 0
1993 32 15 7 6 3 0 0
1994 31 15 6 5 2 0 0
1995 24 16 1 5 2 0 0
천안 일화 천마 1996 25 16 5 7 2 0 0
1997 12 0 1 0 2 0 0
1998 13 1 3 0 3 1 0
1999 16 5 3 2 4 0 0
성남 일화 천마 2000 36 14 13 6 4 0 0
통산 (K리그) - 293 146 71 43 27 1 0
K리그 기록은 리그컵 포함. 2016년 6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

연도 경력
2010 ~ 2011 부산 아이파크 수석코치
2012 충남 일화 천마 감독
2014 성남 FC 수석코치 => 감독대행
2015 건국대학교 감독


선수 시절

프로 시절

1990년 일화 천마에서 데뷔, 1991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1993년 일화의 우승에 기여 MVP와 베스트 11을 차지하며 일화의 전성기를 이끈다.2001년엔 부천 SK로 이적했으나 부상으로 부진했고, 결국 2001년을 마지막으로 프로무대를 내려온다.

국가대표 시절

1990년 2월15일 노르웨이전에서 데뷔, 데뷔골을 뽑아낸다. 제1회 다이너스티컵에 출전 한중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맹활약 한다. 결국 1990년 FIFA 이탈리아 월드컵의 본선 엔트리에 들었으나 본선 출전에는 실패한다. 1992년 제2회 다이너스티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던 이상윤은 1997년 대표팀에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5년만에 국가대표에 복귀한다.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전 경기(8경기)에 출전, 3골[1]을 득점하며 맹활약 한다. 이후 킹스컵다이너스티컵 그리고 각종 평가전에서 득점을 하며 맹활약 하지만 1998년 월드컵 본선에서는 극도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질타를 받는다. 네덜란드와의 본선 2차전을 마지막으로 이상윤은 국가대표 무대를 내려온다.[2]

플레이 스타일

발이 빠르며 드리블 능력이 뛰어나다. 찬스가 나면 바로 슈팅으로 연결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지도자 생활

업적



이야깃거리

  • 현역 시절 별명은 팽이였으나 해설때 목에 가래가 낀다해서 가레스 베일의 이름을 따 가레스 상윤으로 불리고 있다.
  • 흥겨운 축구 해설로 '막걸리 해설로 불리고 있다.
  • 건국대학교 감독 취임 이후에 건대 출신 선수가 맹활약하면 해설중에 건대출신임을 강조한다...

갤러리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최용수의 선취골로 앞서나갔으나 샤츠키흐의 동점골로 다잡은 경기를 놓칠뻔 했던 잠실에서의 우즈베키스탄과의 2차전에서 경기종료를 얼마 안남겨두고 결승골을 넣으면서 2연승을 기록, 대한민국을 상승세로 이끈다.
  2. 2006년 베스트 일레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멕시코전을 앞두고 훈련중에 머리에 공을 맞고 쓰려져 잠시 기절했고 깨어났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에 나선게 원인이었음을 밝힌바가 있다. 당시 신문선 MBC 해설위원은 네덜란드전에서 교체카드를 모두 소진해버리자 이 선수를 빼지않는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