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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7일 (일) 17:35 판
김호 (1944년 11월 24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64년부터 1979년까지 실업축구에서 활동하였던 중앙 수비수이다. 선수 생활 정리 후에는 1977년부터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박종환ㆍ김정남 등과 더불어 198ㆍ90년대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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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
유소년 생활
194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축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 통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지역 명문 축구부로 유명한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교 시절부터 기량이 일취월장하여, 수비수임에도 빠른 발을 지녔기에 전도유망한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
실업축구 선수로
그러나 고교 졸업 후에 실업팀을 알아보며 입단을 조율했으나, 끝내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제일모직 축구단에 입단에 성공하였으며, 군 복무를 해병대 축구단에서 보내다가 1967년 2월 창단한 양지 축구단에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부터 김정남 씨와 함께 국가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성장하였다. 이후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상업은행 축구단에서 활동하였으며, 1975년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선수 말년을 보낸 뒤 1977년 최종 현역에서 은퇴하였다고 한다.
국가대표 생활
동래고에서 활약으로 청소년 대표팀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청소년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후 실업 축구에서 활약과 해병대 축구단과 양지 축구단에서 활동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발탁되어 A매치에서 총 77경기에 출전하였다고 한다. 국가대표에서는 주로 중앙 수비나 우측 측면 수비로 나섰으며, 빠른 발에 침착성, 그리고 판단력이 좋은 수비수로 당시 현대 축구에 가장 적합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
100미터를 12초에 주파하며 수비수치고 준족을 자랑하는 선수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빠른 발을 지닌 상대를 놓치는 법이 없을 정도라 60년대 후반 언론사에서는 국가대표팀 수비 제1인자라는 찬사까지 받은 바 있다. 또한, 상당히 침착한 수비 스타일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수비수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지닌 선수로 불리기도. 게다가 프로 의식도 충실하고 경기가 없을 때에도 축구에 대해 계속 연구하는 스타일이라 언론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도자 생활
현대 호랑이 시절
1977년부터 지도자로 활동한 김호 감독은 모교인 동래고등학교를 시작으로 1983년에는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7년까지 활동하였다. 1988년에는 조중연 감독의 후힘으로 프로팀 현대 호랑이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프로 감독으로 첫 시작을 알렸다.
국가대표팀 감독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제1대 감독
1995년, 신생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대전 시티즌에서
한동안 프로팀과 거리를 두고 숭실대학교 총감독에 취임한 김호 감독은 2007년 7월 13일로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63세의 나이로 현역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당시 대전은 최윤겸 감독이 이영익 씨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임된 상태였기에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할 적임자로 노련한 김호 감독이 낙점된 것이었다. 일선으로 복귀한 김호 감독은 시즌 중반에 팀을 수습하여 대전을 삼성 하우젠 K-리그 2007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등 녹슬지 않은 지도력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대전에서 오랜기간 활약하던 선수나 공을 들인 유망주를 내치고 과거 자신이 키워온 제자를 중용하는 이유로 대전팬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하였다. 게다가 2008년들어 성적이 곤두박질쳤던 것도 비판 여론에 한 몫 거드는 역할을 하고 말았으며, 2009년에는 대전 구단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성적마저 뒷받침이 못되었기에 자진 사퇴를 권고받고 말았다. 이에 김호 감독은 법적 대응까지 시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결국에는 대전 감독직을 사임하였다.[1]
그 이후
이후 야인으로 지내고 있으며,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15년 6월부터 용인시축구센터의 총감독으로 부임하였다고 한다.
에피소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전임 감독이다.
같이 보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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