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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축구와 숭의종합운동장의 인연 == | == 프로축구와 숭의종합운동장의 인연 == | ||
− |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숭의종합운동장에서는 [[K리그]]가 총 | + |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숭의종합운동장에서는 [[K리그]]가 총 48차례 열렸다. 1984년부터 1986년은 [[수퍼리그]]라 하여 프로축구 팀들이 투어 형식으로 각 지역을 돌고는 했던바, 인천 시리즈가 개최되면 숭의종합운동장에서 경기가 치러졌고, 1987년부터는 1991년까지는 주로 [[유공 코끼리|유공]]의 홈경기가 치러졌다. ref>당시 유공의 연고지가 명목상이긴 하지만 인천/경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0년 시즌 종료 후 유공은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했지만 1991년까지도 숭의에서 홈경기를 더러 치르곤 하였다.</ref> 이어 1996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가 홈경기장인 구덕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임시로 1경기를 인천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이후 2004년 [[문학월드컵경기장]]이 육상 트랙 공사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경기가 일시적으로 열리기도 하였다. |
이하는 연도별 숭의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K리그 경기 수를 목록화한 것이다. | 이하는 연도별 숭의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K리그 경기 수를 목록화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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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96년 10월 20일, [[부산 대우 로얄즈]]와 [[전북 현대 다이노스]]의 경기는 부산의 홈구장인 [[구덕종합운동장]]의 공사 관계로, 숭의구장에서 치러졌다. 이 날 경기에서 부산의 [[김학철]] 선수는 자신의 프로 데뷔골이자 자신의 프로 통산 유일한 골을 득점한다.<ref>이 골은 결승골이 되며 부산이 2-1로 승리하였으며, 덤으로 [[김학철]]의 이 골은 K리그 통산 3500호 골로 기록되기도 했다.</ref> 공교롭게도 8년 뒤 김학철은 인천 소속으로 다시 이 경기장에서 뛰게 된다. 인천과 인연이 있었던듯.. | ||
− | * | + | * 현대식으로 증축했다지만, 철거할 때까지 조명탑과 관중석 의자가 없었다. 따라서 낮 경기만 가능했는데, 2004년 인천의 홈경기가 숭의에서 치러질 당시 인천 구단 측은 관중들에게 깔개와 햇빛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종이 모자를 지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에 접어들면서 선수들 체력 문제가 염려되자, 여름 경기는 숭의가 아닌 문학보조구장에서 야간 경기로 치러지기도 했다. |
− | * | + | * 경기장이 특이하게도 남북배치가 아닌 동서배치에 가까웠다. 여기에 낮 경기만 가능해서 동쪽에 있는 선수와 관중은 햇빛을 마주본채로 경기에 임하거나 관전해야 해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중의 경기는 선수들에게도 관중들에게도 고역이었다. 반면 전광판은 서쪽에 있었기에 그 밑에 그늘이 만들어졌고, 그 자리는 홈팀인 인천 서포터즈가 자리를 잡았었다. |
− | * | + |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가 확정되자, 숭의종합운동장을 철거하는 것이 아닌 존치가 검토되기도 했었다. 대회를 개최하려면 2개의 종합경기장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 하지만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를 이용하고 [[고양종합운동장]] 등 외부 분산 개최가 합의되면서 숭의종합은 철거가 확정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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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일 (일) 23:35 판
인천 숭의종합운동장은 1936년 8월2일 개장된 후, 2008년 5월 7일까지 존재했던 인천의 종합운동장이다.
과거에는 인천공설운동장, 인천종합운동장으로도 불리었다.
역사
과거 인천부 시절부터 인천의 공설운동장 역할을 했던 웃터골 운동장[1] 터에 인천중학교(오늘날의 제물포 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도산정(오늘날의 도원동으로 지금의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자리)에 새롭게 공설운동장이 지어지면서 숭의종합운동장의 역사는 시작된다. 1936년 8월2일 개장하였으며[2] 1964년에 전국체전을 앞두고 확장 공사를 수행하며, 현대식으로 개축하였다. 본래 명칭인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숭의종합운동장으로 개명된 것도 이 때의 일. 이후 1964년, 1978년, 1999년까지 전국체전을 3차례 개최하였으며, 이후 문학월드컵경기장이 준공되면서 활용도가 줄어든데다 본 자리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들어서기로 결정되면서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프로축구와 숭의종합운동장의 인연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숭의종합운동장에서는 K리그가 총 48차례 열렸다. 1984년부터 1986년은 수퍼리그라 하여 프로축구 팀들이 투어 형식으로 각 지역을 돌고는 했던바, 인천 시리즈가 개최되면 숭의종합운동장에서 경기가 치러졌고, 1987년부터는 1991년까지는 주로 유공의 홈경기가 치러졌다. ref>당시 유공의 연고지가 명목상이긴 하지만 인천/경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0년 시즌 종료 후 유공은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했지만 1991년까지도 숭의에서 홈경기를 더러 치르곤 하였다.</ref> 이어 1996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가 홈경기장인 구덕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임시로 1경기를 인천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이후 2004년 문학월드컵경기장이 육상 트랙 공사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경기가 일시적으로 열리기도 하였다.
이하는 연도별 숭의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K리그 경기 수를 목록화한 것이다.
연도 | 경기수 | 연도 | 경기수 | |
---|---|---|---|---|
1984 | 4 | 1989 | 3 | |
1985 | 12 | 1990 | 4 | |
1986 | 6 | 1991 | 2 | |
1986 | 6 | 1996 | 1 | |
1987 | 4 | 2004 | 4 | |
1988 | 2 | 총 48경기 개최 |
에피소드
- 원조 할렐루야 축구단의 프로 마지막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다.1985년 시즌 마지막 경기를 숭의구장에서 치른 할렐루야 축구단은 현대 호랑이에게 2-3으로 패배한 후, 아마축구 전환을 선언해 프로축구단으로서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 1996년 10월 20일, 부산 대우 로얄즈와 전북 현대 다이노스의 경기는 부산의 홈구장인 구덕종합운동장의 공사 관계로, 숭의구장에서 치러졌다. 이 날 경기에서 부산의 김학철 선수는 자신의 프로 데뷔골이자 자신의 프로 통산 유일한 골을 득점한다.[3] 공교롭게도 8년 뒤 김학철은 인천 소속으로 다시 이 경기장에서 뛰게 된다. 인천과 인연이 있었던듯..
- 현대식으로 증축했다지만, 철거할 때까지 조명탑과 관중석 의자가 없었다. 따라서 낮 경기만 가능했는데, 2004년 인천의 홈경기가 숭의에서 치러질 당시 인천 구단 측은 관중들에게 깔개와 햇빛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종이 모자를 지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에 접어들면서 선수들 체력 문제가 염려되자, 여름 경기는 숭의가 아닌 문학보조구장에서 야간 경기로 치러지기도 했다.
- 경기장이 특이하게도 남북배치가 아닌 동서배치에 가까웠다. 여기에 낮 경기만 가능해서 동쪽에 있는 선수와 관중은 햇빛을 마주본채로 경기에 임하거나 관전해야 해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중의 경기는 선수들에게도 관중들에게도 고역이었다. 반면 전광판은 서쪽에 있었기에 그 밑에 그늘이 만들어졌고, 그 자리는 홈팀인 인천 서포터즈가 자리를 잡았었다.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가 확정되자, 숭의종합운동장을 철거하는 것이 아닌 존치가 검토되기도 했었다. 대회를 개최하려면 2개의 종합경기장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 하지만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를 이용하고 고양종합운동장 등 외부 분산 개최가 합의되면서 숭의종합은 철거가 확정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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